HISTORY
한국 양복의 역사와 함께한, 장미라사

1954년 우리나라 최대의 제조업인 제일모직이 세워지며
독일 등지 에서 배워온 기술을 바탕으로 우리 기술로 패브릭
생산을 하고자 하였고, 이 테일러 패브릭 테스트 용으로 부서를
설립한 것이 장미라사의 시초입니다. 테스트 부서는 제일모직과
함께 있었으나 완전하게 옷을 생산하는 기능은1956년부터 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부터 성장한 장미라사는 60년 대 초 삼성 계열사로 주식회사 설립을 하게 되었으며 외부 판매를 하기 시작했는데 주 고객은 전쟁 후 세대의 가장 부유했던 미8군 이었습니다. 이 후 장미라사는 신세계 본점 본관의 3층 한 층을 모두 사용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으며, 60년대 후반 삼성물산이 의류업에 진출하게 되며 조직 개편을 통해 삼성 물산으로 편입됩니다. 이 후 장미라사의 기술 이전을 바탕으로 기성복들을 출시 하게 되는데, 처음 만든 기성복 신사복 브랜드 '댄디'를 시작으로 '버킹검'을 거쳐 현 '로가디스'까지 이어집니다.

장미라사는 기성복 브랜드와는 다른 방향으로 걸어갑니다. 70년대 초에는 당시 유명했던 일본 바라문 양복점에서 기술 전수를 받고 그 후 원단의 고급화와 기성복과의 차별화를 위해 1978년 9월 다시 제일모직으로 편입되어, 테일러 기능과 안테나샵의 두가지 기능을 하게 됩니다. 77년 삼성물산으로 입사해 장미라사에서 계속 있던 현 장미라사 대표 이영원 대표가 1984년부터 총 지배인으로 임명되며, 1986년 비로소 해외로 눈을 돌려 비교하기 시작하여, 영국, 이태리에서 기술 교류를 하게 됩니다. 삼성에서는 당시 럭셔리 제품의 생산에 눈을 돌려, 월드베스트 전략을 세우고 88년 올림픽의 해에는 매장부터 모든 것을 업그레이드하여 세계 최고라는 목표에 맞게 투자하여 명품으로의 도약을 하고, 급기야 조직과 테일러의 방향이 맞지 않아 88년 11월 1일 부로 분사하게 되어, 독자적인 테일러 장미라사가 설립됩니다. 88년 부터는 제일모직 원단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유명 원단들을 사용하기 시작하고, 헨리 풀과 이태리 콜롬보 사에서 한국을 방문하여 기술 전수도 받게 됩니다. IMF 시기를 기점으로, 우리나라의 1위라는 이름의 의미가 없어져 해외시장과의 퀄리티 경쟁을 하게 되고, 92년 부터는 해외와의 트레이드 쇼, 트렌드 쇼를 통한 적극적인 교류를 하게 되어 한 걸음 더 도약합니다.

정통 비스포크의 시작은 1998년부터로, 영국식 비스포크를
지향하는데 테일러의 원래 기능인 '고객 맞춤'으로 돌아가고자
소재와 부자재의 기획 개발부터 참여, 진정한 장인이
완전한 이태리 핸드 공법으로 만들기 시작합니다.
시간은 몇배로 걸리지만 옷의 변동을 최소화 하는 전통
방법인 바늘 직각 통과 기법부터, 모든 것의 비접착으로
시작해 진정한 비스포크 수트를 만들어 나갑니다.

삼성생명본사에 위치한 본점 외에, 1998년 갤러리아
명품관에 최초 한국 브랜드로 입점, 2013년에 부산 센텀시티 점에 3호점을 오픈한 장미라사는 네팔 왕실 전속 테일러를 시작으로 해외에도 진출해 현재 중동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며 글로벌한 브랜드로 도약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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